맹장 수술기

일상다반사 2012. 10. 24. 13:35

급성 충수염. 즉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 일주일 만에 퇴원하여 이제 출근했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출근하여 궁시렁 거리면 일을 하다가 일요일 점심을 먹고난 이후 부터 슬슬 배가 살살 아파왔다.
컨디션이 별로 안좋은데 문서를 만들며 이사람 저사람 찝적거리다 두줄 쓰는데 문서를 읽고, 인터넷 뒤져서 니가 공부해서 쓰라는 별 거지 같은 소릴 듣고선 짜증이 만땅 난 시점부터 점점 속이 안좋아졌다.
그러곤 결국 이래저래 문서를 쓰고 시험을 하고 다르거나 틀리거나 한걸 여기저기 알리면서 문서를 만들고 났더니 월요일 새벽이다.
배는 계속 아프고 (이때 까지만 해도 체한줄 알았다) 피곤은 하고, 아까 났던 짜증은 아직 안풀리고... 결국 새벽에 동트는걸 보고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마침 집앞 약국이 문을 열고 있길래 잽싸게 따라 들어가서 소화제를 하나 사서 먹고는 씻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한 두시간여 잤나? 배가 계속 아프다.ㅡㅡ 결국 일어나서 화장실에 앉았는데 별로 나오는게 없다. 설사도 안나오고.. 먹은게 있어야 말이지.. 일요일 점심부터 속이 안좋았기 때문에 커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다시 자려고 누웠는데 배가 살살 아파서 잠이 안온다.
결국 동네 병원을 가보기로 하고 인터넷을 뒤져서 동네 내과 위치를 알아낸 다음 CMA 카드를 챙겨 들고 추리닝을 입고선 슬리퍼를 끌고 쭐래쭐래걸어나갔다.

제법 걸어 도착한 동네 내과에서 여의사가 배를 여기 저기 눌러본다. 안아프다.ㅡㅡ 약간의 통증은 있지만 그냥 눌러서 아픈줄 알았다. 여의사라 그런지 손가락이 작아서 그걸 세워서 지방질이 가득한 내 복부를 푹푹 찌르니 약간의 통증이 없을수가 없다고 생각했지.ㅡㅡ
결국은 진통제를 한방맞고 병원에 좀 누워 있는데 호전될 생각을 안한다.
한방 더 맞고 물한잔 마시고 누웠는데, 빈속에 찬물이 들어갔다고 조금 지나서 토하고 말았다. 나오는건 물밖에 없더군.ㅡㅡ
안되겠다고 이곳 의사가 응급실로 가보라며 소견서를 하나 적어준다.

소견서를 주섬주섬 챙겨들고는 택시를 타고 건대 응급실에 가서 제출하고 응급실 침대에 누웠다.
배가 계속 살살 아프다. 못참을 정도로 아프진 않다. 그냥 좀 심하게 체한 정도다.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졸다가 하고 있으니까 의사가 오더니만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며 피를 뽑아갔다. 소변검사를 해야하니 소변도 받아오란다.
받아다 주고 한참을 기다리니 앞에서 'XXX 환자? 이상없는데 왜 배가 아프지?' 라며 지들끼리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이어이. 그런건 안들리는데 가서 하라고..ㅡㅡ
한두어시간쯤 복통을 견디며 기다리고 있자니까 이번엔 다른 의사가 오더니만 엑스레이를 찍잔다.ㅡㅡ 찍자니까 뭐... 찍었다. 또 한두어시간쯤 기다리니 또 다른 의사가 오더니만 이번엔 CT 를 찍잔다.ㅡㅡ 이런 젠장 돈 없어 죽겠구만 돈좀 깨지겠구나 CMA 카드 챙겨오길 잘했구나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CT 를 찍었다.
또 한두어시간쯤 기다리니 벌써 어둑어둑하다. 밤을 샛기 때문에 피곤하고 졸려서 배가 계속 아픔에도 자다가 깨다가 해서 별로 지루한줄은 몰랐다.
이번에 또 다른의사(의사가 대체 몇명일까? 이 응급실..ㅡㅡ)가 오더니만.. 혈액검사에서 염증반응 두개 중 하나만 나와서 CT 를 찍고 보니 맹장염 같단다.(같다는 뭐냐? 같다는?ㅡㅡ) 수술을 해야 하니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지금 여기서는 수술이 너무 밀려 있어서 곤란하고 가능한 병원으로 연결시켜 주겠단다.

아.. 제기랄... 가지가지 하는구나. 지갑 잃어버린지 얼마나 됬다고 곱창도 잘라 내야 되게 생겼구만.

회사랑 본가에 전화를 하니 부모님이 놀라시며 올라오시겠단다.ㅡㅡ

좀 기다리니 엠뷸런스가 온다. 이동식 침대같은걸 끌고 왔던데..ㅡㅡ 뭘 이런걸 다.. 그냥 걸어서 타고선 수술을 할 병원에 가기 전에 집에 들르자고 해서 노트북과 속옷(알고보니 환자복은 다 벗고 그것만 입는거였다. 속옷은 필요 없엇다.ㅡㅡ)을 챙겨서 면목동 녹색병원으로 향했다.

건대병원응급실에서 받아온 CT 촬영결과가 담긴 CD 를 주니 지네들이 좀 보겠단다. 또 누워서 한두어시간 기다리니 시간이 벌써 저녁 9시다. 의사가 오더니만 급성맹장이 확실하다며 지금 바로 수술해야 하니 기다리란다. ㅡㅡ 이것 참..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황당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간단히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10시 쯤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팔에 마취약이 투여되고 1~2초후에 눈꺼풀이 스스륵 닫히는걸 느낀 후 일어나보니 이미 수술은 끝난 후고 난 병실에 누워 있었다. 조금 자다가 부모님이 병실에 들어오시는 소릴 듣고 깨서 부모님을 맞이하고 이런 저린 뻔한 이야기들을 하다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앉아 있으니 담당의사가 온다. 와서 하는 말이 염증이 대장까지 번져 있었어서 절제를 하려다가 말았기 때문에 항생제를 좀 오래 맞아야 한다며 6일은 입원해야겠단다.ㅡㅡ

아버지께서는 다시 본가로 내려가시고 어머니만 내 병 수발을 위해서 남으셨다. 사실 별로 할것도 없는데 내려가시라고 해도 그래도 그런게 아니라며 도통 내려가시질 않는다.ㅡㅡ 뭐. 어쩔수 없나 이건..


요새 의학 기술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을 금 할 수 없다. 내가 초딩 무렵 맹장수술 받는 친구놈들을보면 한달씩 학교를 빠졌던 기억이 난다.
당연하겠지. 그때는 개복수술로 말 그대로 배를 째서 맹장(이게 일본식 이름이라던가? 충수돌기가 정확한 명칭이었던것 같다)을 절제후 꿰매고 나서 피부를 꿰매는 수술이었으니까.
수술 후 상처가 아물면 실밥을 제거하는 절차도 필요했던것 같다.
배를 찢어놓았으니 웃거나 기침을 하거나 하면 복부가 긴장되면서 통증을 호소하던 기억도 난다.

요즘은 배꼽에 하나 배꼽 밑에 두개 구멍을 뚫어서 내시경을 삽입하여 개복 없이 충수돌기만을 절제해내는 복강경수술이란걸 하는데 개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술 후 통증도 덜하고 빨리 회복된다.

새벽에 응급 수술 형태로 받았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걸어 다닐 수 있었고 무통주사를 달고 다니니 사실 그다지 아프지도 않았다.
윗몸일으키기를 한 100개쯤 억지로 하고 났을때 느껴지는 정도의 복부 통증이 전부다. 새삼 느끼는거지만 기술 좋구만 요즘은.
물론 웃거나 기침을 하거나하면 조금 땡기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말그대로 좀 땡기는 정도?

수술 이틀 후 가스(방귀)가 나오고 하루는 죽을 먹고 다음부터는 정상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는데 아침점심저녁으로 항생제를 투여하고 링거를 계속 달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별로 아프지도 않고 3일쯤 지나니까 멀쩡해졌다.

그간 회사 사람들과 종석, 수폐인의 병문안이 있었고 상은이가 차를 몰고 와서 집에 잠깐 다녀가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그야말로 심심해서 돌아가실것 같았다. 병원에선 나가지도 못하게 하지, 가져온 책도 다 읽었지.. 누워서 뒹굴거리며 인터넷이나 뒤지고 낮잠 자고 애니랑 영화를 다운 받아 보고... 게다가 상처에 물이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에 샤워도 못하게 해서 찝찝하고..
잦은 헌혈(이건 핑계)과 과다한 피하지방(이게 실제 사유ㅡㅡ) 때문에 혈관이 잘 보이질 않아서 정맥 주사를 왼쪽 손등에 맞고 있었기 때문에 세수도 머리감기도 불편하기 그지없고..

암튼 쉰다 생각하고 병원에 있었는데 같은 병실의 할아버지와 아저씨들의 코골이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똑같이 맹장염으로 수술한 뚱뚱한 아저씨가 퇴원 이틀전에 병실에 왔는데 이아저씨의 코콜이가 심각한 수준이다.(실제로 어떤 아저씨는 못견디고 병실을 옮기기까지 했다.ㅡㅡ)
더구나 이 아저씨는 낮에도 거의 자면서 코를 골아댓기 때문에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통증으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더 심할지경이었다.
나도 코를 골기 때문에 별말 안하고 참았는데 같은 병실의 할아버지(이 할아버지도 코골이가 심하다. 본인은 모르는것 같았지만) 와 우리 어머니, 역시 같은 병실의 택시기사(교통사고후 입원했다)가 엄청 욕을 해댓다.
불면증이 있다는 어떤 아저씨(뭣때문에 입원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신경정신관계인것 같았다)는 병실을 옮겼다.

소음공해를 견디며 드디어 일요일. 일주일 만에 손에 링거를 빼니 벌써 다 나은 기분이다. 퇴원하여 집으로 가니 그간 어머니가 집과 병원을 오가며 대 청소를 해 놓으셨다.ㅡㅡ 음.. 평소 그다지 깨끗하게 하고 살지 않은게 딱 들켜서 민망하기 그지 없다.ㅡㅡ

퇴원 후 어머니가 일주일 만에 본가로 내려가시는걸 터미널까지 나가 배웅하고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퇴원을 보고 하고 아울러 월요일 화요일 이틀 연차 휴가를 냈다.

조용한 집에서 그간 밀렸던 판타지 무협지를 즐기며 휴가를 보낸후 오늘. 드디어 출근했다.


여기 까지가 길고 긴 수술기다.

모두다 건강 조심하도록 하자. 아무리 기술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역시 아픈건 아픈거다.

퇴원때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병원과 경찰서는 안갈수록 좋다.

Posted by 행인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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